제주도 고·양·부 삼성(三姓)은 어디에서 왔을까?
제주도는 과거에 탁라 또는 탐라라고 불렀습니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을나·양을나·부을나 라고 하는
세 성씨가 탐라왕국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게 제주도의 삼성(三姓) 신화라고 합니다.
단군신화도 그렇지만 신화는 가상의 이야기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실을 신화의 양식으로 전해진 겁니다.
그러면, 삼성(三姓) 신화의 코드 속에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을까요?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님이 발표한
‘탐라국 형성의 원류’에서 그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서기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 고조선 문명권을 구성했던 원민족들이 새 정착지를 찾아
동남방으로 대이동을 합니다.
왜냐면 이 때는 한무제가 위만조선으로 쳐들어 오고, 고구려·신라·백제·가야가 건국하는 등
동북아의 정세가 아주 급박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족속들이 한반도 쪽으로 이동할 때였습니다.
참고로, 위만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제후국인 연나라
노관의 부하 장수입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뒤에 공신들의 세력이 커질 것을
두려워 하여 공신들을 제거하는데,
노관은 유방의 친구여서 다행히도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유방이 죽고 악독한 여태후가 권력을 잡자
노관의 목숨은 위태롭게 됐습니다.
이에 노관은 흉노로 도망가고, 위만은 무리를 이끌고 단군조선의 왼쪽 날개인
번조선의 준왕에게 망명합니다.
준왕은 위만을 받아주지만, 1년 뒤에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맙니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가 위만조선을 통치할 때 한무제가 쳐들어 오는 등 상당한 압박이 가해집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로 인해서 한민족의 여러 족속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고구려족·양맥족·부여족 일부가 바닷길로 각각 제주도에 도착하여,
세 부족이 연합하여 제주 최초의 고대국가를 세우는데, 바로 탐라국입니다.
이 건국 사건이 고·양·부 삼성인의 신화로 전해지는데,
고을나는 고구려족 족장, 양을나는 양맥족 족장, 부을나는 부여족 족장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을 예맥족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양맥족은 예맥족의 한 갈래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문헌과 유물, 유적 등 몇가지 사례로 이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삼신인의 ‘을나’ 호칭은 고구려·양맥·부여 등 북방에서 이동해 온 예맥족 호칭이며,
'신당서' 등 중국측 고문헌에는 탐라국 국왕의 성을
부여·고구려 왕족의 성명 중 하나인 '유리(儒李)'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탐라국 왕자 고씨가 일본에 사절로 갔을 때
'일본서기'에 고구려족임을 뜻하는 '구마(久麻)'로 표기한 점입니다.
그리고, 1984년 제주시 용담동 석곽무덤에서 철제 장검 2점이 발굴되는데,
이 장검은 한반도 남쪽에는 없는 것으로
만주 길림성과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영역에서만 발견된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제주도의 수혈주거지가 만주 등 북방족의 수혈주거양식과 동일하고,
삼을나가 거주지를 정할 때 사용한 활쏘기가 맥족의 관습이란 것을 보면
탐라를 건국한 세력이 북방에서 온 고구려,양맥,부여족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탐라국 형성 초기 유적유물들이 모두 제주도 북방 해안에
집중된 점을 보면 이런 사실을 더 뒷받침 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