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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한국사 역대 왕조 계보

한눈에 보는 한국사 역대 왕조 계보

 *환단고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교과서 내용을 나누어 함께 정리했습니다.

[환단고기 기준]

환국桓國

(BCE7197~BCE3897)

7대 환인 3301년

안파견환인

배달倍達

(BCE3897~BCE2333)

18대 환웅 1565년

거발환환웅

조선朝鮮

(BCE2333~BCE238)

47대 단군 2096년

단군왕검

북부여

(BCE239~BCE58)

6대 단군 182년

해모수

고구려高句麗

(BCE58~668)

28대 727년

고주몽

대진(발해)

大震

(668~926)

15대 259년

대중상

마한

백제百濟

(BCE18~660)

31대 679년

온조

진한

신라新羅

(BCE57~ )

박혁거세

통일신라

( ~935)

56대 993년

변한

가야연맹伽倻

(42~562)

521년

고려高麗

(918~1392)

34대 475년

왕건

(한양) 조선朝鮮

(1392~1910)

27대 519년

이성계

 

[삼국사기와 교과서 기준]

고조선

古朝鮮

(BCE2333~BCE108

 

부여

(BCE238~494)

 

고구려高句麗

(BCE37~668)

발해

(698~926)

마한

백제百濟

(BCE18~660)

진한

신라新羅

(BCE57~ )

통일신라

( ~935)

변한

가야伽倻

(42~562)

고려高麗

(918 ~1392)

조선朝鮮

(1392~1910)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이 자료를 정리해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류사학이라고 하는 기존의 교과서 실린 역사뿐만 아니라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환단고기’를 기준으로 한 역사도 같이 정리했습니다.

왜냐면, ‘환단고기’에 실린 내용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 11월부터 약 14개월 동안 조선총독부는 조선 강토 구석구석을 뒤져

역사서를 포함한 20여 만 권의 도서를 수거하여 대부분 불살라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뭘까요?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정신을 없애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실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만든 역사인데요.

내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니까 한국인, 일본인 이렇게 나눠지는 거죠.

남남처럼요. 그리고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상처를 안겨다 주죠.

 

하여튼 20여 만 권의 도서를 불태워 버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역사를 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남겨 놓은 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입니다.

그들이 주로 손댄 부분은 우리의 고대사였으니까

굳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불태울 필요가 없었던 거죠.

고대사를 없앤 이유는

“너거들 역사는 우리 보다도 짧고 미개한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중국에서 선진문화를 전해줘서 겨우 나라도 세우고 그렇게 한 거지.

한반도 남쪽 지역은 우리가 지배한 적도 있어.

그러니 우리가 너거들 식민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

이런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 인 거죠.

 

그러니 기본적으로 우리역사는 본래 모습에서 많이 왜곡되었다고 봐야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역사를 봐야 제대로 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광복 후에 정립된 우리 역사는 내내 이병도를 필두로 하는 식민사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고조선전’에 환인,환웅,단군 세 분만 등장하죠.

저도 과거에는 그렇게만 알았었고요,

하지만 ‘환단고기’에서는 7분의 환인과 18분의 환웅, 47분의 단군이 있다고 합니다.

환인, 환웅, 단군은 어떤 특정한 한 분을 지칭하는 게 아니고 통치자의 호칭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환국, 배달, 조선 입니다.

우리민족을 배달의 민족 이라고 하죠.

아주 오래 전에 ‘배달’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던 겁니다.

‘배달’은 ‘밝은 땅’이란 뜻입니다.

 

7분의 환인, 18분의 환웅, 47분의 단군의 호칭은 ‘왕 계보’ 편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요,

후속편으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군왕검은 47분의 단군 중에 첫 번째 단군입니다.

교과서에서는 단군조선의 역년이 비슷하게 나오지만 나머지 단군들에 대한 기록은 없고,

단군이 아닌 준왕같은 번조선의 왕들을 단군이라고 서술하기도 합니다.

단군조선은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중앙은 단군이 직접 다스렸고

나머지는 부단군 격인 왕들이 다스렸다고 하는데 기존 교과서에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사서나 삼국유사에 있는 내용만으로 교과서를 만들다 보니, 나라의 역년은 엄청나게 긴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조선’이라고 부르는데, 그때 당시의 나라이름은 ‘조선’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후대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아주 오래 전의 조선이다 그래서 ‘고조선’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은 ‘부여’ 의 역사인데요.

건국 연도는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나라가 문을 닫는 연도는 많은 차이가 나죠.

‘환단고기’에는 BCE58년에 북부여의 역사가 끝나는데,

현재 교과서에는 서기494년까지 지속이 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환단고기’는 정확하게 북부여와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동부여의 역사를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서부여 등 여러 부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부여의 역사는 북부여, 동부여를 포함해서 모든 부여의 역사가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왜냐면, 부여사를 잘 알 수 있는 사료가 없기 때문이죠. 다 불태워졌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부여의 역사가 그렇게 길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해모수를 고주몽의 아버지로 서술하고 있으나

‘환단고기’에서는 해모수는 북부여를 건국한 북부여의 1세 단군이며 고주몽의 고조부라고 합니다.

북부여에는 해모수에 이어 5분의 단군이 있으니까 상식적으로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될 수 없죠.

이것은 광개토대왕 비문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고구려의 건국 시기를 보면, ‘환단고기’에서는 BCE58년, 교과서에는 BCE37년으로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고주몽은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인 고무서 단군의 사위가 되는데,

고무서 단군은 아들이 없이 붕어하면서 고주몽이 북부여의 대통을 이어받아 제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가 바로 BCE58년이죠. 그리고 BCE37년에 국호를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게 되는데요,

‘환단고기’에서는 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BCE 58년으로 고구려의 건국연도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왕조 계보는 ‘환단고기’나 기존 교과서 내용은 대동소이한데요.

한가지 유념해서 볼 것은 대진국입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대진국의 역사는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대진국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가 분명한데 ‘삼국사기’에서 빼버린 것은 정말 잘못된 역사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진국’이라고 하면 아마 생소하게 들리죠.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항상 ‘발해’ 라고 배웠기 때문인데요.

대진국 사람들이 발해란 바다 이름을 가지고 나라 이름으로 하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대진大震’은 큰 동방의 나라란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정통성을 가지고 왕조를 계승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 역사의 맥을 크게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과서는 상고시대의 자료가 빈약해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정통성을 계승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왜냐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는 우리의 고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와 반대로 ‘환단고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초대 환웅인 거발환환웅은 환국의 마지막 환인인 지위리환인께 아뢰어

국통 계승을 상징하는 천부와 인을 전해 받고 해뜨는 동방으로 와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배달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배달국의 마지막 환웅인 거불단환웅이 세상을 떠나고 38세의 단군왕검이 추대되어

배달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통일하여 단군조선을 개국합니다.

 

북부여는 어떻게 단군조선을 계승했을까요?

단군조선은 44세 구물단군 때 국호를 대부여로 바꿉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단군은 말기 혼란한 나라를 더 이상 이끌지 못하고

오가에게 새 단군을 천거할 것을 부탁하고 제위를 떠납니다.

이때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 해모수는 지금의 길림성 서란 지역인 웅심산에서 기두하여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대부여를 계승해서 그 북쭉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국호를 ‘북부여’라고 했습니다.

 

북부여 마지막 단군인 고무서단군의 사위가 된 고주몽은 북부여를 계승해서 고구려를 엽니다.

국호를 고구려로 한 것은 고조부인 해모수가 고리국 출신이고,

증조부인 고진이 ‘고구려후’였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합니다.

고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태어난 온조에 의해 백제가 건국되고

북부여의 5세 고두막단군의 딸인 파소가 낳은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가 됩니다.

 

처럼 북부여의 역사는 우리 역사가 단군조선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로 계승되는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후에 대중상은 나라를 새로 열고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국호를 ‘후고구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대진국(발해)은 고구려를 계승했고, 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국호를 고려로 합니다.

 

이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교과서의 내용으로는 우리 역사가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잘 알 수 없는데, ‘환단고기’의 내용을 추가하면 상고시대의 역사가 명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까 환단고기 편을 좀 든 거 같은데, 선입견 없이 팩트를 가지고 역사 공부를 해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으로 우리 역사의 왕조 계보를 정리해봤습니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일반적으로 BC와 AD로 표기하나, 종교에 대한 중립적인 의미로 여기에서는 서기전과 서기를 BCE와 CE로 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