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 일본
일본의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1954년생 말띠입니다.
우리 나이로 올해(2020) 67세죠.
아베가 어떻게 성장하였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삶의 여정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베의 친가와 외가의 정치적 성향은 완전 정반대입니다.
친가는 반전에 평화주의자인 반면에 외가는 일본 제국주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베의 할아버지 ‘아베 간’은 야마구치현(조슈번)의 대지주 출신입니다.
중의원을 지냈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42년에 대놓고 전쟁 반대를 외치며
총리이자 태평양 전쟁의 핵심전범인 ‘도조 히데키’를 정면으로 비판할 정도로 반전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1946년 총선을 준비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죠.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냈고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어 총리가 될려는 목전에
췌장암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친가쪽으로 불운한 운이 있는 건가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베의 직계는 아니지만 아베의 할머니 윗대에 ‘오오시마 요시마사’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청일전쟁을 일으키기 전날에 경복궁을 공격하여 점령한 인물이죠.
그는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인물로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5000여 명의 일본군을 이끌로 조선으로 들어옵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조정에서 진압할 힘이 부족하니까 청나라에 지원 요청을 하게 되는데
이때 텐진조약을 근거로 일본도 군대를 보냅니다.
그때 당시 일본은 호시탐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였죠.
그래서 청군은 동학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아산만으로 상륙했지만, 전혀 다른 의도를 가졌던 일본군은 인천으로 상륙합니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서울로 들어가 급기야 조선을 청일전쟁의 거점지로 삼기 위해 경복궁을 포위해서 점령하고 맙니다.
그리고 청일전쟁의 승기를 잡으면서 동학군까지 완전히 진압하게 돼죠.
외가쪽을 볼까요?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1930~1940년대 만주국에서 주요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를 최전선에서 주도하던 1급 전범입니다.
그는 1급 전범인데도 다른 전범들이 처형당하기 전날 갑자기 석방되어 나중에 자민당 체제를 확립하고
총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외종조부(기시 노부스케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는 1972년까지 7년이나 넘게 장기 집권한 총리입니다.
동생과 성이 다른 이유는 ‘노부스케’가 기시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베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조슈번(야마구치현) 출신입니다.
조슈번은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서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이자
우리나라를 병탄한 대부분의 주역들을 배출한 지역이죠.
모두 '요시다 쇼인'의 제자입니다.
그렇지만 친가와 외가가 모두 조슈번 출신이라고 해도 정치적 성향은 극명하게 갈리는데요,
그렇다면 아베는 어느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까요?
결론적으로 아베는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베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일찍 부모님을 잃고 이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아베 간’도 일찍 이혼하게 되는데요, 또한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아베의 아버지인 ‘신타로’는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신타로’는 자식을 대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는 법을 잘 몰라 아들인 아베와 불화가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아베는 자신에게 따뜻한 정을 줬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와 돈독한 사이가 됩니다. 자연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그래서 그는 학생 시절부터 자신을 아베 간의 손자가 아니라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라고 칭하고 다녔으며,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는 196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2020) 59살입니다.
‘아키에’는 일본 최초 제과 주식회사인 모리나가 제과의 마쓰자키 아키오(松崎昭雄) 회장의 딸이죠.
불임 때문에 슬하에 자녀는 없습니다.
가장 활동적인 총리 부인으로 꼽히고 있고요, 남편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으며 어떨 때는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는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한류 팬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고인이 된 박용하의 팬으로 그가 자살한 뒤 조화를 보내고
부부가 함께 조문한 적도 있습니다.
아베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으나 1년 만에 사퇴하고 맙니다.
그때 당시 아베는 친한파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참배하였고,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해결하겠다고 하는 등 우익의 색깔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금과는 180도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요,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일까요?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고 외가의 영향을 받았다면 지금의 모습이 아베의 본모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릇된 역사관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 갈등을 일으키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어 일본을 재무장 시킬려고 하는 것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베의 정치 성향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日本会議’입니다.
일본회의는 1997년 결성되었고 회원이 38,000명입니다.
어쩌면 현 아베 정권을 움직이는 힘은 일본회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일본 국회의원의 40%가 일본회의 간담회에 속해 있고 아베 내각의 80% 이상이 일본회의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당연 아베도 ‘일본회의’의 회원입니다.
모두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힘이 있으면 힘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전후 패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막강한 국력을 신장하면서
과거를 잊어버린지 오래인 거 같습니다.
힘이 다시 생기니까 제국주의의 향수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이 추구하는 이러한 방향은 당분간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겠죠.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몇가지만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는 조직의 장을 부르는 호칭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다소 혼선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부르는 호칭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의 정부 기관 중 가장 높은 것은 성(省)입니다.
외무성, 문부과학성 이렇게 부르죠.
우리나라는 부(部)라고 부르죠. 외교부, 국방부...
일본은 성(省)의 최고직을 '대신(大臣)'이라고 합니다.
정식 호칭은 대신(大臣)이지만 종종 상(相)으로 부르기도 하죠.
외무대신이지만 외무상으로도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성(省)의 하위 기관인 청의 최고직은 '장관'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청장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은 장관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래서 일본의 장관은 우리의 차관급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위청이나 내각관방의 우두머리를 장관이라고 부릅니다.
방위청장관, 관방장관이라고 부르죠.
관방장관은 좀 낯선 호칭이죠?
우리의 청와대 조직에 해당하는 내각관방의 우두머리입니다.
관방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정치 제도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은 내각제이면서 양원제입니다.
중의원과 참의원이 있죠. 미국에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데 상원 우선주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의원이 실질적인 권한과 우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의원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할 권한이 있으며 조약체결에 관한 심의에 있어서도 참의원보다 우선권을 가집니다.
임기는 4년입니다.
참의원은 특별한 위치가 불분명하고 그냥 법안을 한번 더 심의하는 정도여서
일본내에서 참의원 무용론도 많이 제기된다고 합니다.
임기가 6년인데 3년마다 절반을 다시 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