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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한국사 역대 왕 계보2

한눈에 보는 한국사 역대 왕 계보

②북부여에서 가야까지

 *환단고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교과서 기준

[북부여 왕 계보(6대 182년)] *환단고기 기준

  단군
1세 해모수
2세 모수리
3세 고해사
4세 고우루(해우루)
5세 고두막
6세 고무서

북부여에는 6분의 통치자가 있습니다.

북부여는 단군조선을 계승해서 통치자도 단군으로 불렀습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통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부여의 역사를

환단고기에 의해 이렇게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북부여의 1세 단군은 해모수입니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을 동명왕이라고 하고 있으나,

환단고기에서는 북부여의 5세 고두막단군을 동명왕(東明王)이라고 합니다.

4세 고우루단군 때 한무제가 번조선을 무너뜨리고 북부여까지 침공해 왔을 때

그것을 물리치고 북부여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바로 고두막단군입니다.

그래서 그를 동명왕(東明王)이라고 부릅니다.

 

[동부여 왕 계보(3대 108년)] *환단고기 기준

  왕명
1세 해부루
2세 금와
3세 대소

해부루, 금와, 대소는 역사 드라마에도 나오는 인물인데요, 동부여의 왕입니다.

북부여와 동부여의 역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동부여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이 병사하고 대권이 고두막단군으로 넘어가자,

고우루단군의 동생인 해부루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세운 나라가 동부여입니다.

3세 대소왕 때 고구려에 망하지만 대소왕의 동생이 두만강 유역에 갈사부여를 세웠고,

또한 대소왕의 종제에 의해 지금의 요령성 개원에 연나부부여(서부여)를 세워 한동안 명맥을 이어갑니다.

 

[고구려 왕 계보(28대 727년)]

  본명 왕명 황제명(*환단고기 기준) 연호
1세 고주몽 동명성왕 고주몽성제(高朱蒙聖帝) 평락(平樂)
2세 고유리 유리왕 유리명제(琉璃明帝)  
3세 고무휼 대무신왕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  
4세 고해색수 민중왕    
5세 고해무 모본왕    
6세 고궁 태조왕    
7세 고수성 차대왕    
8세 고백고 신대왕    
9세 고남무 고국천왕    
10세 고연우 산상왕 산상제(山上帝)  
11세 고우위거 동천왕 동천제(東川帝)  
12세 고연불 중천왕    
13세 고약로 서천왕    
14세 고상부 봉상왕    
15세 고을불 미천왕    
16세 고사유 고국원왕    
17세 고구부 소수림왕    
18세 고이력 고국양왕    
19세 고담덕 광개토대왕 광개토경호태황(廣開土境好太皇) 영락(永樂)
20세 고거련 장수왕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 건흥(建興)
21세 고나운 문자왕 문자호태열제(文咨好太烈帝) 명치(明治)
22세 고흥안 안장왕    
23세 고보연 안원왕    
24세 고평성 양원왕    
25세 고양성 평원왕 평강상호태열제(平岡上好太烈帝) 대덕(大德)
26세 고대원 영양왕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 홍무(弘武)
27세 고건무 영류왕    
28세 고보장 보장왕 보장제(寶臧帝) 개화(開化)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인 고무서단군은 아들이 없어 사위인 고주몽에게 대권을 물려줍니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은 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꿉니다.

국호를 고구려로 한 것은 고조부인 해모수가 고리국 출신이고, 증조부인 고진이 ‘고구려후’였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꿉니다.

고구려 때부터는 왕의 이름에 성씨가 분명하게 등장하는데, 모두가 고씨 성이죠.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국왕은 왕으로 표현을 하는데, 환단고기에서는 ‘고주몽성제(高朱蒙聖帝)’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 하듯이 모두 황제로 칭합니다.

고구려는 어떤 나라일까요?

 

고구려는 연호를 썼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을 보면 광대토대왕은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썼다고 나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유적, 유물의 금석문을 보면 고구려는 ‘영락(永樂)’ 이외에도

여러 연호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칭제건원(稱制建元)이라고 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따로 연호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왕은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고 황제만이 연호를 사용할 수 있죠.

고구려는 독립적인 연호를 사용한 천자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환단고기와 같이 황제의 호칭으로 부르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라 왕 계보(56대 993년)]

  본명 왕명 연호   본명 왕명
1세 박혁거세 혁거세거서간   29세 김춘추 태종무열왕
2세 박유 남해차차웅   30세 김법민 문무왕
3세 박유리 유리이사금   31세 김정명 신문왕
4세 석탈해 탈해이사금   32세 김이흥 효소왕
5세 박파사 파사이사금   33세 김흥광 성덕왕
6세 박지마 지마이사금   34세 김승경 효성왕
7세 박일성 일성이사금   35세 김헌영 경덕왕
8세 박아달라 아달라이사금   36세 김건운 혜공왕
9세 석벌휴 벌휴이사금   37세 김양상 선덕왕
10세 석내해 내해이사금   38세 김경신 원성왕
11세 석조분 조분이사금   39세 김준옹 소성왕
12세 석첨해 첨해이사금   40세 김중희 애장왕
13세 김미추 미추이사금   41세 김언승 헌덕왕
14세 석유례 유례이사금   42세 김경휘 흥덕왕
15세 석기림 기림이사금   43세 김제륭 희강왕
16세 석흘해 흘해이사금   44세 김명 민애왕
17세 김내물 내물마립간   45세 김우징 신무왕
18세 김실성 실성마립간   46세 김경응 문성왕
19세 김눌지 눌지마립간   47세 김의정 헌안왕
20세 김자비 자비마립간   48세 김응렴 경문왕
21세 김비치 소지마립간   49세 김정 헌강왕
22세 김지대로 지증왕   50세 김황 정강왕
23세 김원종 법흥왕 건원(建元) 51세 김만 진성여왕
24세 김삼맥종 진흥왕 건원(建元), 개국(開國), 태창(泰昌), 홍제(鴻齊) 52세 김요 효공왕
25세 김사륜 진지왕   53세 박경휘 신덕왕
26세 김백정 진평왕 건복(建福) 54세 박승영 경명왕
27세 김덕만 선덕여왕 인평(仁平) 55세 박위응 경애왕
28세 김승만 진덕여왕 태화(太和) 56세 김부  경순왕

신라는 어떻게 탄생됐을까요?

일반적으로 신라는 사로 6촌이 성장하여 신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환단고기에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단군조선은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고 했죠. 진한, 마한, 번한의 삼한인데요.

단군조선의 말기로 가면서 나라가 어수선 해지고 한나라의 침략도 이어지면서

삼한의 백성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한반도 남쪽에도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진한과 서쪽의 마한, 남쪽의 변한이 형성하게 되는 거죠.

박혁거세 탄생 설화를 보면 사로 6촌 내부의 인물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 온 인물이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알 속에서 짠~ 하고 나타났는데, 실제로 알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죠.

외부에서 이주해 온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박혁거세의 출생비밀을 밝히고 있는데요,

박혁거세의 어머니는 북부여 5세 단군인 고두막한 단군의 딸인 파소(婆蘇)라고 합니다.

파소는 미혼으로 임신하게 되어 북부여를 떠나 진한으로 오게 되었고, 그래서 낳은 아들이 박혁거세입니다.

사로 6촌에서는 이런 박혁거세의 혈통을 알았기 때문에 후에 왕으로 추대하지 않았나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박, 석, 김의 세 세력이 각축을 벌이다가

내물왕 때부터 말기에 박씨 왕들이 잠깐 등장하는 것 외에 김씨가 계속 왕위를 세습합니다.

그에 따라 왕의 호칭도 변화가 있는데요, 22세 지증왕이 왕의 호칭을 사용하기 전에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왕의 호칭은 중국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받아 사용한 호칭이고요,

그 전에 사용한 것은 전통적인 호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거서간은 진한(辰韓)의 말로 을 말하는 것이고

혹은 귀인(貴人)을 부르는 칭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서간은 신령한 대인, 군장을 뜻합니다.

또한, 북방 초원의 유목민족이 여러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대표로 뽑을 때,

뽑힌 사람을 거서간이라고 부른답니다. 간은 칸과 같은 뜻입니다.

 

차차웅제사장이란 뜻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거서간이나 차차웅은 단군처럼 제사장이면서 군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금연장자란 뜻입니다.

남해차차웅이 죽을 때 아들 유리와 사위 석탈해에게 연장자가 왕위를 이으라고 유언을 합니다.

그래서 치아가 많은 유리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가 많으면 연장자이고 연장자는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박,석,김씨가 돌아 가면서 이사금을 하다가 17세 내물마립간 때부터는 김씨가 세습을 하게 됩니다.

완전히 왕권을 장악했다는 거죠. 그리고 이때부터 왕의 호칭도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뀝니다.

마립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마립간은 대수장, 대군장이란 뜻입니다.

마립은 말뚝인데요, 조선시대에 왕궁에 품계석이 있듯이 왕의 말뚝 뒤로 신하들은 관등에 따라 말뚝을 세우고

그 뒤에 섰기 때문에 왕을 마립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간은 북방 유목민족의 천자를 뜻하는 칸입니다.

또는 북방 유목민족의 말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는 마립은 머리를 말하는 것이여서 마립간은 간들의 우두머리, 간 중의 간이란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마립간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보다는 강력한 실권을 가진 왕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뀐 시기가 신라의 왕권이 확립되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리고 신라는 법흥왕 이후에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나라의 영향이 커지면서 진덕여왕 4년(서기650)에 당의 압력에 굴복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폐기하고, 당 고종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김알지는 신라 김씨 왕의 시조가 되는 인물인데요,

박혁거세와 마찬가지로 그도 짠~ 하고 경주에 나타납니다.

김알지는 탈해왕 때인 서기 60~65년에 황금 상자 이야기를 통해서 등장하는데요,

그의 후손으로 처음 왕위에 오른 인물은 6대손인 13세 미추이사금이죠.

그리고 17세 내물마립간부터는 쭉 김씨만 왕위를 세습합니다.

문무왕비

여기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김알지 선조에 대한 것인데요,

30세 문무왕 비문에 그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무왕 비문에는 신라 김씨 왕은 투후의 후손이라고 합니다.(秺侯祭天之胤)

투후(秺侯)는 한무제의 최측근인 김일제(金日磾)를 말합니다.

그는 흉노 좌현왕의 아들로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되어

궁궐의 말 돌보는 일을 맡게 됩니다.

후에 한무제의 눈에 띄어 발탁이 되고, 무제의 측근이 된 흉노 왕자 김일제는

망하라의 반란을 막은 공으로 ‘투후(秺侯)’에 임명됩니다.

 

그렇다면 경주에 짠~ 하고 나타난 김알지는 어떻게 신라 땅까지 오게 되었을까?

김일제 후손 중에 왕망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新)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하지만 신(新) 나라 후한 광무제에게 패하고 왕망은 서기 23년에 사망합니다.

하루 아침에 몰락한 김일제의 후손들은 일족이 몰살당할 처지에 놓이자 망명의 길을 떠납니다.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지만 김알지를 비롯한 김일제의 후손들은 이렇게 해서 경주까지 오게 됩니다.

뒤에 또 이야기 하겠지만, 금관가야의 김수로왕도 김알지와 같이 흉노의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와 가야에는 북방 기마민족의 유물이 대거 발굴되는데

이것은 흉노의 혈통을 가진 김알지와 김수로왕이 신라와 가야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줍니다.

천마도

대표적인 유물이 천마총의 천마도와 동복(銅鍑)입니다.

신라의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는 서기 약 5세기 경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때면 김씨가 세습해서 왕권을 잡고 있을 때죠.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 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자작나무가 한반도에는 없는 나무인데요,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만 있는 나무입니다.

신라 왕이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나무 껍질로 말다래를 만든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죠.

북방에서는 자작나무를 아주 신성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동복

그리고 동복(銅鍑)은 동으로 만든 솥인데요,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제사의식을 치르기 위해 말에 싣고 다니던 제기입니다.

신라나 가야 토기를 보면 말 등 위에 동복이 올려진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유추해 보면 신라와 금관가야의 김씨 왕은

북방 흉노의 혈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왕 계보(31대 679년)]

  본명 왕명   본명 왕명
1세 부여온조 온조왕 17세 부여아방 아신왕
2세 부여다루 다루왕 18세 부여영 전지왕
3세 부여기루 기루왕 19세 부여구신 구이신왕
4세 부여개루 개루왕 20세 부여비 비유왕
5세 부여초고 초고왕 21세 부여경 개로왕
6세 부여구수 구수왕 22세 부여도 문주왕
7세 부여사반 사반왕 23세 부여삼걸 삼근왕
8세 부여고이 고이왕 24세 부여모대 동성왕
9세 부여책계 책계왕 25세 부여사마 무령왕
10세 부여분서 분서왕 26세 부여명농 성왕
11세 부여비류 비류왕 27세 부여창 위덕왕
12세 부여계 계왕 28세 부여계 혜왕
13세 부여구 근초고왕 29세 부여선 법왕
14세 부여수 근구수왕 30세 부여장 무왕
15세 부여침류 침류왕 31세 부여의자 의자왕
16세 부여휘 진사왕      

북부여의 6세 고무서단군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주몽을 사위로 삼아 딸인 소서노와 결혼시키고 대권을 물려줍니다.

고주몽은 북부여의 대권을 계승하고 후에 국호를 고구려로 바꿉니다.

그리고 동부여에 두고 온 아들 유리를 태자로 삼을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고구려를 떠납니다.

후에 온조는 다시 무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를 건국하게 되는데요,

100명의 핵심 세력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서 국호를 백제(百濟)라고 짓습니다.

백제는 북부여에 뿌리를 두고 나왔다고 해서 왕의 성씨는 부여입니다.

26세 성왕은 수도를 지금의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칩니다.

남쪽에 있는 부여라는 건데요, 이것만 봐도 백제의 뿌리가 부여에서 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금관가야 왕 계보(10대 491년)]

  왕명   왕명   왕명
1세 수로왕 5세 이시품왕 9세 겸지왕
2세 거등왕 6세 좌지왕 10세 구형왕
3세 마품왕 7세 취희왕    
4세 거질미왕 8세 질지왕    

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보면 수로왕도 김알지와 마찬가지로 짠~ 하고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로왕은 158년을 재위하다가 199살에 사망할 정도로 상당히 장수 합니다.

금관가야는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이 공격하자 항복해서 신라에 합병됩니다.

금관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진골에 편입하게 되는데요, 10세 구형왕의 증손자가 김유신 장군입니다.

앞에서 김알지와 김수로왕이 모두 흉노의 혈통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김일제가 한나라의 포로가 될 때 동생 ‘김윤’도 함께 잡혀 옵니다.

김일제의 후손이 김알지이고 동생 김윤의 후손이 김수로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