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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21세기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소련 해체 이후 땅에 떨어졌던 러시아를 재건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종신집권까지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21세기의 차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1952년 용띠로 우리나이 올해 69세입니다.

아버지는 소련 해군 수병 출신인데 육군에서 복무하다 레닌그라드 전투에 참여해

중상을 입은 상이군인입니다.

푸틴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소련 노동자들이 사는 낡고 허름한 공동 주택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푸틴의 청소년기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또래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며 크고 작은 비행을 저지르던 비행청소년이었습니다.

독실한 정교회 신도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의 행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엄격한 가정교육과 푸틴과 가깝던 운동 코치들의 지도 덕분에 푸틴의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고학년 시절부터는 모범 학생이 되었고 학교 성적도 우수해졌습니다.

 

푸틴은 어린시절부터 취미를 붙여 유도를 했는데요, 대학시절에는 유도 사범자격을 얻었고

지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첩보원들의 영웅적인 모습에 사로잡혀 일찍이 KGB를 동경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KGB 레닌그라드 지부 공보관을 알게 됐는데, 그의 조언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부에 입학했고 재학 중인 1974년 KGB 수습요원으로 발탁됐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광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국제법 학사

 

1983년에 류드밀라 푸티나와 결혼했고, 1985년에 KGB 동독 드레스덴 지부로 파견됩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드레스덴 지부에서 근무하는데요,

이때의 일은 첩보 요원처럼 활동한 것은 아니고 상당히 평이한 정보업무였다고 합니다.

 

류드밀라는 전직 항공기 승무원 출신인데요, 두 사람은 발레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2013년 푸틴과 류드밀라는 이혼을 하죠.

류드밀라에 의하면 “대중 앞에 서는 게 싫었고, 비행기를 타는 일도 너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위키미디아

푸틴과 류드밀라 사이에는 두 딸이 있습니다.

 

‘마리아 푸티나’와 ‘예카테리나 푸티나’인데요.

올해 마리아는 35세, 예카테리나는 33세입니다.

푸틴의 가족에 대해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드러난 게 별로 없습니다.

두 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나왔고, 큰 딸은 생물학을 전공했고

작은 딸은 아시아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작은 딸인 예카테리나와 윤종구 전 해군제독의 아들의 결혼설이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사실이 아니라고 하죠.

 

그리고, 러시아 리듬체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리듬체조계 레전드인 ‘알리나 카바예바’가

푸틴의 차기 아내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정보업무에 종사한 전직 KGB 요원이 어떻게 최고의 권좌에 오르게 됐을까요?

 

2018.05 ~ 제7대 러시아 대통령

2012.05 ~ 2018.05 제6대 러시아 대통령

2008.05 ~ 2012.05 제10대 러시아 총리

2004.05 ~ 2008.05 제4대 러시아 대통령

2000.05 ~ 2004.05 제3대 러시아 대통령

1999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르바초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과 패권 경쟁에서 패배해 침체에 빠져 있던 소련을 재건하기 위해 개방과 개혁을 시도하는데요,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는데 더 불을 붙이게 됩니다.

그리고 1991년 개혁과 개방에 불안을 느낀 기득권 세력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제압합니다.

그런데, 보수파의 쿠데타가 성공하는 듯 했으나 여기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당시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입니다.

푸틴도 이때 보수파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대열에 섰습니다.

옐친은 쿠데타를 반대하면서 시민의 저항을 이끌어내 결국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가고 실권을 잡게 됩니다.

 

고르바초프보다 더 급진 개혁파 정치인인 옐친은 1991년 보수파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그해 말 소련 해체를 주도합니다. 그리고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초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됩니다.

옐친은 근 10년간 러시아를 이끌며 경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또한 실패하고 맙니다.

무리한 경제 개혁으로 러시아는 파산 상태에 이르렀으며 1996년 체첸전의 패배로 정치적 입지가

땅에 떨어지고 탄핵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런 옐친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 푸틴입니다.

일처리를 잘하고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결국 옐친에 의해 발탁이 되고 후계자가 될 수 있었겠죠.

 

출처 : 위키미디아

푸틴은 1998년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 정보국(FSB)의 국장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권력기반을 다지게 되었고, 다음 해인 1999년 8월에 총리에 임명됩니다.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안 옐친은 자신의 사면과 보호를 약속받고 푸틴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푸틴은 1999년 12월 옐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지명되었고 다음 해 선거에서

러시아의 두 번째 직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푸틴의 등장은 어쩌면 강대국 소련의 향수에 젖어있는 러시아의 바램인지도 모릅니다.

소련 해체와 러시아의 혼란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이죠.

 

1999년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지명된 이래 올해 2020년까지 2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푸틴은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안이 통과되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합니다.

현재 69세니까 85세까지 대통령으로 있겠다는 건데요, 말 그대로 종신집권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러시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죠.

 

그렇다면 푸틴은 어떻게 파탄직전까지 간 러시아를 다시 세우고 자신의 권력을 탄탄하게 만들었을까요?

 

푸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강력한 국가권력 확립과 경제재건' 및 '강대국 지위 회복' 등을

국정목표로 삼았습니다. 사실 20년 이상 집권하는 동안 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다.

고르바초프, 옐친을 거치는 동안 쪼그라들고 위축된 국가 위상을 그 전보다는 상당히 회복한 게 사실입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게 된 데는 푸틴이 추진한 여러 가지 정책이 성과를 냈기 때문에 가능한데요,

첫 번째가 체첸 전쟁에 승리한 것입니다.

옐친이 하지 못한 것을 푸틴은 해냅니다. 1999년 총리에 임명되면서 체첸반군들에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시작으로 2009년에 정식 종료되는 긴 싸움이었지만 결국 체첸 분리독립을 진압하는데 성공합니다.

러시아로서는 체첸의 분리독립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체첸은 러시아의 남쪽 안보선인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러시아의 사활이 걸려있는

중요한 지리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슬람권인 체첸이 독립한다면

러시아 내 이슬람 주민에 대한 파급력이 엄청 큰 것도 분리독립을 막을 수밖에 없는 큰 이유입니다.

또한, 푸틴의 권력을 탄탄하게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게 경제입니다.

파산지경까지 간 러시아의 경제를 복원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석유 때문입니다.

첫 취임 때 배럴당 30달러를 밑돌던 석유값은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던 2008년쯤 150달러로 올랐습니다.

산유국인 러시아는 이 석유값 폭등 덕에 망가지던 경제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푸틴은 소련 해체 이후 국가재산을 독식하는 과두재벌들인 ‘올리가르흐’를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의 부패와 특권, 혼란의 상징이던 올리가르흐들에 대한 푸틴의 조치는 국민들의 지지와

자신의 권력을 다지는 길이었죠.

올리가르흐는 자신과 결탁했던 옐친이 후원한 푸틴이 계속 자신들을 옹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력한 푸틴이 자신들에게는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죠.

하지만 푸틴은 달랐습니다.

올리가르흐의 상징인 거대 석유기업 유코스의 경영주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탈세로 투옥시키는 등

단호하게 대처하고 그들의 모든 특권을 통제하고 지배했습니다.

 

체첸의 분리독립을 저지하여 더 이상 러시아가 금이 가지 않도록 봉합하고 석유을 통하여

무너진 경제를 회복했으며, 또한 부패한 올리가르흐들을 국가가 제대로 통제하자 국민들은 환호했고

그의 권력 기반은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푸틴은 헌법을 개정하여 종신집권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푸틴의 권력을 탄탄하게 만들고 러시아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

과거의 강대국 지위를 회복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어른거리던 그해 러시아는 조지아(그루지야)와 전쟁을 벌입니다.

조지아로부터 분리독립하려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명분은 그렇지만 당시 조지아는 친서방 정책을 펼치며 나토 가입을 시도하자,

러시아는 미국에 경고하는 차원에서 전쟁을 벌이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를 조지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시켜 자신의 영향권에 넣었습니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러시아 군대를 보내 합병을 시켜버렸습니다.

그해 우크라이나에 혁명이 일어나 친러 정부를 쫓아내고 반러시아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자

군사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그리하여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합병됐습니다.

러시아의 이런 행동은 나토의 동진 등 러시아의 안보와 실리에 해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강한 러시아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푸틴은 일반 정상들과는 달리 유별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웃통을 벗고 말을 타거나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아마 그건 개인적인 성향과 의도된 연출이 조합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푸틴은 지각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국 정상들을 만날 때 약속시간을 제대로 안지키기로 유명합니다.

몇 십분에서 2~3시간 늦기도 하는데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4시간을 지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나 김정은 같은 경우에는 미리 그것을 예상하고 더 늦게 나오는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 않으면 지각을 더 심하게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는 더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이것도 의도적인 지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상을 만나는 자리에 개를 끌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베 총리를 만날 때 그랬고 메르켈 총리를 만날 때도 큰 개를 데리고 나왔죠.

메르켈 총리가 맹견을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고 개를 데리고 나온 거죠.

파격을 뛰어넘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