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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과 현처 마황후

주원장과 현처賢妻 마황후馬皇后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에 의해 건국된 원元 제국은 100년도 못가 문을 닫게 됩니다.

초원의 유목민족이 안주하다가 부와 권력에 빠져 관리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백성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묶었다고 해서 이들을 홍건적紅巾賊이라고 합니다.

한때 이 홍건적에 의해 고려의 개경이 함락되기도 했습니다.

 

이 홍건적들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며 원나라에 저항하지만 서로 대권을 잡기 위해 피터지는 싸움을 합니다.

당시 호주濠洲를 중심으로 곽자흥郭子興의 홍건군있었는데요, 훗날 명태조가 되는 주원장은 그의 수하가 됩니다. 대기근으로 부모 형제를 잃고 탁발승으로 유랑하던 주원장은 25세에 자신의 발판이 되어주는

곽자흥을 만납니다.

 

곽자흥의 수하가 된 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승승장구 하게 되고 결국 그의 사위가 됩니다. 곽자흥은 친한 친구가 죽자 그의 딸을 양녀養女로 삼았는데요, 그녀가 바로 마씨입니다.

훗날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고 마황후馬皇后가 됩니다.

 

마씨는 어려서 불우하게 살았기 때문에 전족을 하지 못해 발이 컸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인은 아니지만 아주 덕이 있고 현명한 여성이었습니다.

지혜로운 마황후는 주원장이 곽자흥의 세력을 이어받고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합니다.

 

주원장은 실제론 추남이었다고 하며 그를 평하기를

“명태조는 성현의 면모, 호걸의 기풍, 도적의 성품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 정도로 상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성격이 아주 괴팍했다고 합니다.

 

첫날 밤에 주원장이 전족을 못해 발이 큰 마황후에게 당신은 왜 발이 크냐고 묻자,

마황후는 당신도 추남이니 그냥 살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마황후는 단순히 덕이 있고 지혜만 있는 사람이 아니고 대담한 여걸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황후는 야사에서 마수영馬秀英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또한 그녀는 전족을 하지 않아

발이 컸던 것을 비꼬는 말로 대각마황후大脚馬皇后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3대 성조成祖 영락제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황후는 비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지략과 통찰력이 있어

평생 주원장의 옆을 지키며 그에게 정확하고도 옳은 헌책을 자주 올렸고,

주원장은 그런 마황후의 이야기를 잘 따랐다고 합니다.

 

주원장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곽자흥이 그를 의심하게 되면 언제나 마씨가 곽자흥의 부인을 잘 섬김으로써

남편이 누명을 벗게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마황후는 수시로 병사들의 의복과 신발을 만들어 공급했으며,

운명을 가르는 파양호 전투 때에는 모든 금은보화와 비단을 털어 군사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마씨의 이런 덕에 힘입어 주원장은 곽자흥이 병사한 이후 그 세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훗날 명을 건국하게 됩니다.

 

명을 건국한 이후에도 마황후의 덕은 빛나는데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주원장에게 간언을 올리고 계책을 바치며 솔선수범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한번은 주원장이 그녀를 당태종의 장손황후에 비교하자 마황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부가 서로 보호하기는 쉬우나 군신은 보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저와 함께한 빈한한 시절을 기억하듯이,

신하들과 함께한 어려운 시절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신첩이 어찌 장손황후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출처 : 위키미디아

또한 신하들에게 가혹했던 주원장이 신하들을 의심하면, 신하들은 마황후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습니다.

마황후는 이들을 슬기롭게 두둔하여 주요 공신과 많은 신하들의 목숨을 건지게 해 주었습니다.

 

마황후는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생각하여, 매우 검소하게 황궁의 살림을 꾸려 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나라에 흉년이 들면 자신은 푸성귀 반찬을 먹으며 하늘에 기도했고,

관리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의 질을 개선하는 등의 일을 앞장서서 한 훌륭한 황후였습니다.

 

주원장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마황후를 위해 그 친척들을 불러 관직에 봉하고자 하였으나,

마황후는 법도에 맞지 않는다며 사양하였습니다.

후일 마황후가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신하들은 황후를 위해 기도할 것을 청하였으나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생사는 운명에 달린 것인데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낫지 않는다 해도 어의를 탓하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임종 전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폐하께서 현인을 구하고 간언을 받아들여 시종일관 신중을 기하시길 바랍니다.

자손들이 모두 현명하고 신하와 백성이 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황후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주원장은 마황후의 현덕함에 감동하여

그 후 황후를 다시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천하에 악독하기로 소문난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도 있지만

덕이 있고 지혜로운 마황후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거지를 황제로 만든 현처賢妻 마황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