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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무굴 제국의 샤 자한과 타지마할

인도 무굴 제국의 ‘샤 자한’과 ‘타지마할’

 

인도의 마지막 왕조는 무굴 제국인데, 이슬람 왕조입니다.

무굴 제국의 창업자는 ‘바부르’입니다.

그는 1483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페르가나에서 출생했으며 부계는 티무르,

모계는 칭기즈칸의 후예입니다.

이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가 ‘샤 자한’입니다.

선대에서 탄탄한 기반을 닦으면서 이때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요,

샤 자한의 두 번째 부인이 ‘뭄타즈 마할’입니다.

뒤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이 ‘뭄타즈 마할’의 이름을 따서 ‘타지마할’이 탄생하게 됩니다.

둘은 금슬이 아주 좋아서 8명의 아들과 6명의 딸을 두었는데요, 그녀는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합니다.

뭄타즈는 데칸 지역에서 14번째 아기를 낳은 뒤 산후욕으로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뭄타즈는 아주 아름답고 쾌활한 여성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죽으면서 남편인 샤 자한에게 두 가지 유언을 합니다.

하나는 절대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샤 자한은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두 약속을 모두 지키죠.

 

그는 인도 아그라의 남쪽 자무나 강가에 ‘대리석의 환상’이라 불릴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건물을 짓습니다. 그녀가 묻힌 궁전 형식의 묘지, ‘타지마할’입니다.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장 22년 동안이나 이 건물을 짓게 됩니다.

‘타지마할’을 지을 때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을

불러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습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입니다.

샤자 한과 뭄타즈의 실제 무덤은 지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장기간 엄청난 국가 재정이 들어가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제국은 흔들렸고

샤 자한은 불운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뭄타즈의 유언이 잘못된 것일까요?

너무 사랑한 왕비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지마할이 탄생했지만,

그 약속을 지킨 샤 자한은 모든 걸 잃게 됩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왕위계승 다툼 과정에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에 유폐를 당하여 여기에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는 타지마할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매일 죽을 때까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뭄타즈를 그리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그녀 옆에 묻히게 됩니다.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19세기, 영국은 경쟁자 프랑스를 물리치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1857년 동인도 회사의 인도 용병인 세포이는 영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었고,

무굴 제국의 마지막 20대 황제 바하두르 샤 2세가 추방됨으로써 무굴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타지마할’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

그것이 타지마할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했습니다.

그대는 경이로운 화환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죽음을 전혀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었습니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내리며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 주려 합니다.

                                                   -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